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(문단 편집) === 유해 발굴 === 1543년 사망 후 유해는 프라우엔베르크 대성당에 매장되었으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기록이 멸실되는 바람에 묻힌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. 1807년 프랑스 황제 [[나폴레옹 1세]]는 그의 유해를 찾기 위해 [[독일·폴란드 원정]] 당시 프라우엔베르크까지 찾았으나 헛수고로 끝났다. 이후 [[폴란드 인민 공화국|공산 정권]]은 폴란드 가톨릭 교회와 껄끄러운 사이여서 한동안 잠잠했다가 폴란드가 민주화되면서 유해 발굴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. 2005년 프롬보르크 대성당 제단 아래를 수색하면서 여러 구의 유골을 발굴했는데, 이 가운데 코페르니쿠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아래턱이 없는 두개골과 다리뼈 등을 수습했다. [[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]]을 통해 해당 유골의 사망 당시 연령은 6–70세로 추정되었는데 코페르니쿠스가 사망한 나이와 비슷했고 부러진 코, 왼쪽 눈 위 흉터 등 두개골의 특징이 현존하는 코페르니쿠스의 초상화와 거의 일치했다. 2008년 [[스웨덴]] [[웁살라 대학교]]의 유전학 전문가 마리 알렌은 기자회견에서 '코페르니쿠스의 책에서 나온 두 가닥의 머리카락의 [[DNA]]가 그의 유해로 추정되는 뼈의 DNA와 일치한다고 밝혔다. [[https://n.news.naver.com/mnews/article/353/0000001051?sid=104|#]]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ncc.phinf.naver.net/8-1.jpg]] 유골을 토대로 복원된 그의 말년의 얼굴[* [[http://m.seoul.co.kr/news/newsView.php?cp=nownews&id=20150724601013|출처]]]}}} || 2010년 5월, 그의 장례식이 사후 거의 500년이 지나 폴란드에서 다시 치러졌다. 폴란드 국민들과 고위 성직자들은 그를 국민적인 영웅으로 기리며 최고의 예우를 다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